조례만드는청소년 해산선언문: 우리는 진 게 아니라 아직 못 이긴 거야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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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만드는청소년 해산선언문: 우리는 진 게 아니라 아직 못 이긴 거야>


사람들이 이제 학생인권 괜찮지 않냐 묻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괜찮지 않습니다. 여전히 학교는 폭력과 모욕의 공간이고, 학생과 청소년은 같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스무 살이 된 후에, 또는 성공한 후에 인간다운 대접 받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서' 바꾸기 위해 모였습니다. 2018년 9월, 조례만드는청소년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을 통해 원래 있어야 할 우리의 권리를 찾기위해 모였습니다. 

조례만드는청소년이 2018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경남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싸웠으나 2019년 7월 19일, 경남학생인권조례안이 자동폐기되며  조례를 제정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이번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평가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로 2019년 12월, 조례만드는청소년의 활동기록집 〈우리는 진 게 아니라 아직 못 이긴 거야〉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2020년 2월 16일 조례만드는청소년의 향후 방향을 결정하는 전체회의에서 우리는 단체를 해산하기로 결정했고, 그 내용을 공유합니다.

조례만드는청소년은 갑자기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경남에서 청소년운동을 해오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2017년 11월 4일 제1회 학생의날 맞이 경남청소년인권문화제 ‘다시 한 번 청소년인권’을 시작으로 매달 집회를 진행했던 〈경남청소년행동준비위〉와 진주, 창원, 김해, 밀양 등 경남에서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뭉쳐 만든 단체입니다.

우리는 “학생의 권리를 되찾겠다”라는 열망을 주고받으며 집회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조례만드는청소년은 2018년 11월 학생의날 문화제를 시작으로 2019년 2월부터 3월까지 일곱 차례 목요집회와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수정 시도를 규탄하는 활동을, 4월에는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한 가장 큰 행사인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범도민대회를 준비했습니다. 5월, 조례안이 도의회에 올라가기 직전 5000여명의 경남 청소년, 도민들의 서명을 모아 촛불시민연대와 함께 1만 서명을 제출하고, 도의회 앞에 농성장을 차려 활동했습니다. 5월 15일 조례안 부결 이후에는 진주와 창원에서 반대한 도의원인 장규석, 원성일 의원을 규탄하는 활동과 7월 13일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사 앞에서 재상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조직해냈습니다. 그럼에도 경남도의회는 조례안을 재상정하지 않았고, 7월 19일 조례안 자동폐기와 함께 우리의 활동도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번 운동을 오랜 시간 공들여 평가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에 청소년운동의 힘은 미약했고, 우리는 크게 성장한 극우 개신교 세력에 비하면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만한 힘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우리와 함께한 시민사회와 교육운동진영의 힘이나 조직력이 갈수록 줄어가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조례를 부결시킨 더불어민주당, 특히 원성일, 장규석 도의원과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위원장을 비롯한 경남도당 집행부가 결코 청소년의 편이 아니라는 점, 소수자의 편에 서는 게 아니라 당장의 표만 의식하는 기회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세력이라는 점도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자세한 평가의 내용은 활동기록집(조례만드는청소년 홈페이지 www.sturight.or.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도의회 구성과 우리 힘에 변화가 없는 한 당분간 경남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조례만드는청소년 내부에서는 조례 제정이라는 방법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례안 자동 폐기 이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더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조례는 학생인권과 청소년인권 보장의 한 방법일 뿐입니다. 우리는 당분간 조례 제정운동에 집중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청소년인권 보장을 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조례만드는청소년은 청소년인권의 보장이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탄생했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한정한 임시적인 단체였기에 조직을 해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신 조례만드는청소년 내에 앞으로도 청소년운동을 이어나갈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조직과 활동을 고민하고 계획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어떤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어떤 조직으로 할지에 대해 논의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2월과 3월 동안 해산 절차를 밟았고, 조례만드는청소년의 남은 자산은 이후 활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어받기로 했습니다.

조례만드는청소년은 경남의 청소년운동에 이제껏 없었던 규모와 집행력을 갖춘 조직이었고 이는 활동가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이만큼 싸워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에서 함께해준 사람들, 물심양면 활동비를 모아주신 분들, 멀리서 응원해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금껏 함께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비록 이번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진 게 아니라 아직 못 이긴 것일 뿐입니다. 새롭게 모인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한 값진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활동해 나갈지는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이기는 날까지, 이제는 청소년들의 삶이 괜찮다 말할 수 있는 그날까지 그 몫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그 길에 함께해주십시오.


2020.04.02

조례만드는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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